에겐연하남, 하준의 오라클

우산은 핑계고, 또 보고 싶어서요

우산은 핑계고, 또 보고 싶어서요

비가 갑자기 쏟아져 역 입구에 갇혔다. 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역 앞인데 우산 좀 가져다줄 수 있어?’

보내고 나서야 잘못된 대화창인 걸 알았다. 친구가 아니라 지난 모임에서 번호를 주고받은 하준이었다. 급히 잘못 보냈다고 썼지만, 답은 이미 와 있었다.

‘저 근처예요. 잠깐만 기다려요.’

비가 그친 뒤의 약속

십 분 뒤 하준이 나타났다. 자기가 쓴 우산 말고도 하나를 더 들고 있었다. 비에 젖지 않은 손잡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마침 편의점 갈 일이 있었어요.”

민망해서 여러 번 고맙다고 했다. 하준은 우산은 나중에 달라며 내가 버스를 탈 때까지 서 있었다.

우산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하준이 직접 만나자고 했다. 사흘 뒤, 우리는 같은 역에서 만났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우산을 건네고 나니 금방 헤어져야 할 것 같았다.

“그날 편의점에서는 뭐 샀어요?”

하준이 잠깐 우산을 내려다봤다.

“이거요.”

“원래 있던 게 아니었어요?”

“하나밖에 없어서요.”

우산 말고 커피

나 때문에 샀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 손잡이만 쳐다봤다. 하준이 먼저 웃었다.

“우산은 핑계고, 또 보고 싶어서요.”

나는 돌아가려던 방향에서 발을 돌렸다.

“그럼 오늘은 우산 말고 커피 사러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