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겐연하남, 하준의 오라클
고백하려던 날, 네가 떠난다고 했다
영화가 끝나면 말하려고 했다. 연습한 첫마디도 있었다. 그런데 예고편이 나오기 전에 하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다음 주에 내려가요. 석 달 정도.”
다른 도시의 매장을 도우러 간다고 했다. 잘됐다고 말하고 나니 준비했던 말이 전부 쓸모없게 느껴졌다.
꺼내지 못한 고백
영화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하준이 물었다.
“재미없었어요?”
“아니.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무슨 생각요?”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지금 건너가면 지하철 입구에서 헤어질 테고, 오늘도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 오늘 너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했어.”
길을 건너려던 하준이 보도 끝에서 발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런데 네가 간다니까, 말해도 되나 싶어서.”
떠나기 전 금요일
그는 내 앞에 다시 섰다. 신호는 얼마 뒤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말 안 했으면 석 달 내내 혼자 궁금해했을 거예요.”
“뭘?”
“나만 좋아하는 건지.”
나는 웃다가 괜히 신발 끝을 보았다. 석 달이 갑자기 짧아진 건 아니었다.
“가서 바쁘면 연락 잘 못 할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출발 전 저녁부터 약속해요. 금요일 어때요?”
초록불이 다시 켜졌다. 우리는 금요일에 뭘 먹을지 이야기하며 길을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