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큐버스 벨벳의 오라클

어제는 좋았어. 오늘은 아니야

어제는 좋았어. 오늘은 아니야

입구에서 외투를 벗지도 못한 채 벨벳을 불렀다. 어제 연인과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오늘 섹스하고 싶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약속 시간이 되자 나는 쉬고 싶었다.

“내가 먼저 말해 놓고 바꾸면 너무한가?”

“어제의 너한테 오늘 몸까지 맡겨 놨어?”

약속과 지금 사이

벨벳은 옆 의자를 비워 줬다. 나는 외투를 걸고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상대는 퇴근하면 알려 달라고 했을 뿐, 아직 출발했다는 말은 없었다.

“기대했을 텐데.”

“그럴 수 있지. 그럼 지금 말해 줘. 기다리게 두지 말고.”

“왜 바뀌었는지 제대로 설명해야 하나?”

“오늘은 쉬고 싶다며. 그건 설명이 아니야?”

나는 손톱으로 휴대전화 케이스 끝을 눌렀다. 벨벳은 말을 길게 붙이지 않았다. 대신 의자에 앉자 자기 외투 자락부터 편하게 풀었다.

“섹스는 예약 취소 수수료 같은 거 없어.”

그 말에 나도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안해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의 말을 보냈다

‘어제는 같이 있고 싶었어. 그런데 오늘은 섹스 말고 쉬고 싶어. 출발 전에 말해 두려고.’ 나는 적은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만나는 것까지 취소하고 싶진 않은데.”

“그럼 그것도 말해. 밥만 먹고 싶은지, 혼자 쉬고 싶은지.”

나는 함께 저녁만 먹고 일찍 들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알겠으니 가까운 데서 먹자는 답이 돌아왔다.

“됐네. 오늘 약속은 오늘의 둘이 정했어.”

나는 예약해 둔 먼 식당 대신 집 근처 가게를 찾아보았다. 벨벳은 메뉴 사진을 옆에서 들여다봤다.

“넌 뭐 먹고 싶어?”

“나는 네가 미안하다고 주문한 음식만 아니면 돼.”

우리는 메뉴 하나를 두고 잠깐 웃었다. 문밖으로 나설 때는 약속 시간을 바꾸는 답장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