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큐버스 벨벳의 오라클
내가 먼저 섹스하자고 하면
벨벳의 거울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었다 내렸다 했다. 연인에게 먼저 섹스하고 싶다고 말해 보려던 참이었다. ‘오늘 피곤해?’까지 쓰고 나니 또 돌려 묻는 말이었다.
“먼저 말하면 내가 너무 밝히는 것 같잖아.”
“성욕 있는 게 들키면 큰일 나?”
누가 먼저 말하느냐
벨벳은 거울 옆 작은 등을 켰다. 내 화면이 더 밝게 비쳤다. 나는 글자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
“보통은 상대가 먼저 말했거든.”
“오늘은 네가 하고 싶은 거고?”
“응. 내가 원해서.”
“그럼 그 말을 해. 상대 마음 맞히는 문제로 바꾸지 말고.”
거울에는 휴대전화를 든 손이 두 개로 보였다. 나는 괜히 머리를 정리했다. 벨벳은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거절하면 민망할 텐데.”
“민망할 순 있지. 그래도 한 번의 거절이 네 매력 성적표는 아니야.”
나는 ‘오늘 같이 있고 싶어’를 썼다. 벨벳에게 보여주자, 같이 영화만 보자는 뜻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물어볼 수 있는 문장
이번에는 뜻을 빼지 않았다. ‘오늘 너랑 섹스하고 싶어. 너도 괜찮아?’ 문장이 짧아졌다. 읽고 나니 뜻을 두 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대놓고인가?”
“응. 그래서 알아듣기 좋네.”
벨벳은 장난스럽게 웃었다가 내 손에서 시선을 거뒀다. 보내는 건 내가 결정할 일이었다. 나는 잠시 기다린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얼마 뒤 답이 왔다. 오늘은 피곤하고, 내일 저녁에 만나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럼 내일 보자’라고 답했다.
“생각보다 별일 없네.”
“둘 다 원하는 때를 고르면 되니까.”
거울 앞을 떠나려다 다시 화면을 봤다. 연인이 내일 먹고 싶은 음식도 물어왔다. 나는 벨벳에게 답장 화면을 보여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