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큐버스 벨벳의 오라클

섹스는 좋지만 사귀고 싶진 않아

섹스는 좋지만 사귀고 싶진 않아

붉은 커튼 아래에서 답장을 세 번째 고쳤다. 상대는 다음에 만나면 우리 사이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섹스는 좋지만 연애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말을 빼고 쓰니, 메시지에는 칭찬만 남았다.

“이 정도면 알아듣지 않을까?”

벨벳이 화면을 읽다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어머. 이건 거의 고백인데?”

칭찬 뒤에 숨긴 말

나는 맨 위에 적은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를 지웠다. 그 아래에는 ‘요즘 내가 좀 복잡해서’가 있었다. 벨벳은 그 문장도 빤히 봤다.

“너무 차갑게 들릴까 봐.”

“따뜻하게 말해. 사귀고 싶다는 뜻까지 얹진 말고.”

벨벳은 테이블 위에 엎어 둔 악마 카드를 돌렸다. 그림 속 사슬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끌리는 건 인정해. 약속은 따로 하고.”

“섹스만 원한다고 하면 날 가볍게 볼 수도 있잖아.”

“그건 아직 모르지.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약속할 거야?”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벨벳은 바로 다음 말을 채우지 않았다. 커튼 밖에서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빼지 않았다

다시 화면을 켰다. 이번에는 핑계를 먼저 쓰지 않았다. ‘너와 섹스하는 건 좋아. 다만 지금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어. 너는 어떤 만남을 원해?’ 적고 나니, 지우고 싶었던 말이 전부 들어 있었다.

“상대가 연애를 원하면?”

“그럼 서로 원하는 게 다른 거지. 네가 설득해서 맞출 일은 아니고.”

“안 만나겠다고 할 수도 있겠네.”

“응. 그 답도 들어야 솔직한 대화지.”

나는 한 번 더 읽은 뒤 전송했다. 벨벳은 화면에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 앞에 비어 있던 물잔도 채웠다.

“좋아. 이제 상대 차례야.”

화면에는 아직 읽지 않았다는 표시가 남아 있었다. 나는 새 문장을 덧붙이지 않고 잔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