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마녀, 블레스의 오라클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신, 거절 금지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신, 거절 금지

“이걸 차고 있는 동안에는 모두가 당신을 좋아할 겁니다. 대신 누구의 부탁도 거절할 수 없습니다.”

블레스가 내민 은팔찌를 망설임 없이 찼다. 원래도 거절은 잘 못하니까,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거절할 수 없는 하루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늘 대화에 끼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먼저 내 이름을 불렀다. 같이 앉자고 자리를 내주었다. 휴대전화에는 처음으로 내가 빠지지 않은 약속이 쌓였다.

그러다 부탁도 쌓이기 시작했다. 대신 맡아 달라는 업무, 주말에 도와 달라는 이사. 잠깐 쉬고 싶어서 입을 열었는데, 내 목소리는 또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블레스 앞에 앉자마자 억지로 올리고 있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턱까지 아팠다.

“벗으면 다들 저를 싫어할까요?”

“벗으면 마법이 끝납니다. 그 뒤에도 당신을 좋아할지는 각자의 마음이지요.”

그는 잠금장치를 가리켰다. 열어 주지는 않았다.

팔찌를 풀고 받은 답

마침 이사를 도와주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조금 더 일찍 와 줄 수 있느냐고 했다. 나는 팔찌를 풀었다. 손목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미안해. 내일은 못 도와줄 것 같아.”

잠깐 정적이 흘렀다. 다시 해 주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쉽다. 그럼 다음 주에 밥이나 먹자.”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다시 차지는 않았다.